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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셰프 역사왜곡 논란, 원작자 국조오례의로 '정면 돌파' 성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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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드라마 '폭군의 셰프', 때아닌 역사 왜곡 논란의 배경

최근 안방극장을 뜨겁게 달구는 tvN 드라마 '폭군의 셰프'가 역사 왜곡 논란의 한가운데 섰다. 최고 시청률 15.4%를 기록하며 높은 인기를 구가하는 이 판타지 로맨틱 코미디는, 현대의 셰프가 조선 시대로 타임슬립해 폭군 왕을 요리로 사로잡는다는 흥미로운 설정으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드라마의 한 장면이 불거지면서 때아닌 '역사 고증' 논란에 휩싸인 것이다. 조선의 왕과 명나라 사신이 나란히 앉아 경합을 지켜보고, 심지어 왕이 사신에게 먼저 고개 숙여 인사하는 장면이 전파를 타자, 시청자들은 즉각 '역사 왜곡'이라는 비판을 쏟아냈다. 이러한 대중의 반응은 K-콘텐츠가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상황에서 더욱 민감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놀랍게도 원작 웹소설 '연산군의 셰프로 살아남기'를 쓴 박국재 작가가 직접 나서 '국조오례의'라는 15세기 국가 공인 예법서를 근거로 제시하며 논란에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과연 작가의 주장이 이 '폭군의 셰프'를 둘러싼 뜨거운 역사왜곡 논란의 불씨를 잠재울 수 있을지, 우리는 그의 주장을 더욱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왕과 사신의 자리, 공분 산 '고증 오류' 주장들

'폭군의 셰프'를 향한 역사왜곡 논란은 드라마 속 특정 장면에서 시작됐다. 문제의 장면은 조선의 왕 연희군과 명나라 사신이 연회에서 나란히 앉아 경합을 지켜보는 모습, 그리고 왕이 사신에게 먼저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대목이었다. 시청자들은 이 장면을 두고 '사신은 의례상 왕 아래에 앉는 것이 마땅하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청나라 사신은 왕 앞에 무릎 꿇고 조서를 전달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혹은 '세종실록에 따르면 왕은 왕좌에 앉고 사신은 동쪽 아래에 자리해야 했다'는 등의 주장을 펼치며 공분을 표출했다. 대다수의 시청자들은 전통적인 역사 교육과 사극에서 접해온 정보에 기반해 조선 왕의 위엄과 명나라 사신과의 위계가 명확하게 존재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특히 명나라 사신이 '황제의 대리인'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주권 국가의 왕이 타국의 사신에게 먼저 고개를 숙인다는 것은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장면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고정관념과 드라마 속 묘사 간의 괴리가 결국 '폭군의 셰프' 역사왜곡 논란을 촉발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대중은 단순히 드라마의 재미를 넘어,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정확한 고증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원작자 박국재, '국조오례의'로 쐐기 박다: 외교 의례의 진실

역사왜곡 논란이 거세지자, '폭군의 셰프'의 원작자 박국재 작가는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상세한 반박문을 게시했다. 그의 주장의 핵심은 바로 1474년(성종 5년) 간행된 국가 공인 예법서인 '국조오례의'였다. 박 작가는 '국조오례의' 중 '빈례(賓禮) 편'에 외국 사신 접대 방법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음을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연회는 사신이 머무는 태평관에서 열리며, 사신의 자리는 동쪽 벽, 왕의 자리는 서쪽 벽에 위치하게 되어 있었다. 이는 곧 왕과 사신이 같은 높이에서 마주 보고 앉는 좌석 배치를 의미한다는 설명이다. 더 나아가 박 작가는 유교적 예법에서 방향이 서열을 의미하는데 동쪽이 서쪽에 비해 더 높으므로, 따지고 보면 사신의 자리가 오히려 상석이었다고 덧붙였다. 왕이 사신에게 먼저 고개 숙여 인사한 장면에 대해서도 박 작가는 기록상 '왕이 먼저 읍(인사)하고 사신이 답읍하게 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그 이유는 명나라 사신이 황제의 대리인이었기 때문에 의전상 조선 왕보다 서열이 높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박 작가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국력이나 주권과는 무관한 당시의 외교적 관례, 즉 국제 행사에서 통용되는 프로토콜 같은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작중 시기(연산군 재위 기간)로부터 불과 30년 전에 편찬된 '국조오례의'가 당시 그대로 행해졌을 가능성이 높기에, 드라마 속 사신의 묘사는 공식 문서에 기반한 '제대로 된 고증'이라는 것이 그의 최종적인 주장이다.

창작의 자유와 역사 고증 사이, '폭군의 셰프'가 던지는 질문

'폭군의 셰프'를 둘러싼 역사왜곡 논란은 비단 이 드라마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대중은 물론 창작자 모두에게 '역사 고증'의 범위와 '창작의 자유'가 충돌하는 지점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물론 현대 시청자들에게는 왕이 사신에게 고개를 숙이는 장면이나 동등한 위치에 앉는 모습이 다소 낯설고 불편하게 다가올 수 있다. 오랫동안 우리는 역사를 통해 주권 국가의 위상과 자긍심을 학습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국재 작가의 반박처럼, 당시의 외교적 프로토콜은 현대적 관점에서 해석되는 '국력'이나 '주권'과는 다른 차원의 복잡한 예법과 서열을 따랐을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역사적 사실의 나열을 넘어, 당시 국제 관계의 역학적 구도와 문화적 맥락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더욱이 '폭군의 셰프'는 엄밀히 말해 '정통 사극'이 아닌 '판타지 로맨틱 코미디' 장르이다. 타임슬립이라는 비현실적 설정 안에서 '고증'의 잣대를 어디까지 적용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도 논쟁의 여지가 될 수 있다. 드라마가 보여준 인기는 이러한 복잡한 고증 논란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것과는 별개로 시청자들이 이야기에 몰입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이처럼 K-콘텐츠가 세계적으로 확장되는 시점에서 역사적 상상력과 고증의 균형을 어떻게 잡아가야 할 것인가는 중요한 숙제로 남았다.

고증 논쟁을 넘어, K-콘텐츠의 성숙한 미래를 향해

'폭군의 셰프' 역사왜곡 논란은 단순히 한 드라마의 문제를 넘어, 대중문화 속 역사 재현의 의미와 한계를 되짚어보게 한다. 박국재 작가가 제시한 '국조오례의'는 분명히 당시 외교 의례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일반 대중에게는 익숙지 않은 내용이기에 초기에는 '왜곡'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논쟁은 고증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는 동시에, 역사적 사실과 대중의 보편적 인식 사이의 간극을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창작자들은 역사의 큰 줄기를 존중하되, 세부적인 고증에 있어서는 더욱 신중하고 폭넓은 자료를 탐구해야 할 것이다. 또한, 논란 발생 시 명확하고 이해하기 쉬운 설명으로 대중과 소통하려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어쩌면 이러한 논쟁 자체가 역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환기하고, 특정 시대의 외교적 관례나 문화적 특징을 더욱 깊이 탐구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폭군의 셰프'를 둘러싼 이번 논란이 K-콘텐츠가 역사적 상상력의 지평을 넓히면서도, 고증의 깊이를 더해 더욱 성숙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하나의 이정표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노잇. - KNOW IT. 세 줄 요약

tvN 드라마 '폭군의 셰프'가 조선 왕과 명나라 사신의 의례 장면으로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였다. 원작자 박국재 작가는 1474년 간행된 국가 예법서 '국조오례의'를 근거로, 당시 왕과 사신이 같은 높이에서 마주 앉고 왕이 먼저 인사하는 것이 외교적 프로토콜에 따른 '고증'이었다고 반박했다. 이 논쟁은 창작의 자유와 역사 고증 사이의 균형점, 그리고 대중문화 속 역사 재현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K-콘텐츠의 성숙한 미래를 위한 중요한 화두를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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