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기술, 잊혀진 전쟁의 색을 되찾다
전쟁의 기억은 시간이 흐르며 희미해지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다. 특히 80년 전 끝난 태평양 전쟁의 상흔은 현대인에게 흑백 사진처럼 멀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최근 인공지능(AI) 기술이 이 흑백의 장벽을 허물고, 전쟁의 참혹함과 그 속에서 살아간 이들의 얼굴에 생생한 색을 불어넣고 있다. 오키나와 전투 당시의 사진들을 컬러화하여 SNS에 공개하고 책으로 엮은 호리뇨 씨의 작업은 이러한 시도의 대표적인 예이다. 그는 전쟁을 잘 모르는 이들, 특히 일본 본토의 젊은 세대에게 전쟁의 현실을 더 가깝게 느끼게 하고자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밝힌다.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 "우리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 전쟁에 휘말렸다"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한다. 이처럼 AI는 과거를 현재로 소환하는 강력한 도구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이는 기억의 계승이라는 숭고한 목표에 기여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AI가 보여주는 ‘색’이 과연 온전한 ‘진실’의 색인가에 대한 깊은 고찰이 필요해 보인다. 우리는 AI가 선사하는 선명한 이미지를 통해 과거의 얼굴과 마주하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복합적인 감정과 역사적 맥락까지도 함께 헤아려야 한다.
오키나와의 상처, 컬러로 되살아난 일상의 비극
호리뇨 씨가 컬러화한 오키나와 전투 사진들은 보는 이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흑백 사진 속 희미했던 피난민들의 얼굴, 미군으로부터 식량을 건네받는 소년의 눈빛, 그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다 구조된 여성의 앙칼진 시선은 색이 입혀지면서 훨씬 더 생생한 고통과 생존의 몸부림을 전한다. 호리뇨 씨는 특히 여성과 아이들이 담긴 사진을 주로 선택하는데, 이는 전쟁 속 가장 취약한 존재들의 모습을 통해 보편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키려는 의도이다. 전쟁 전 오키나와는 활기 넘치고 근대화된 도시였다고 한다. 그러나 전쟁이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들고, 사람들의 삶에서 ‘색’을 송두리째 빼앗아갔다는 사실은 컬러화된 사진을 통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한 70대 남성은 컬러 사진이 "이해하기 쉽다"고 말하고, 10대 고등학생들은 "자신과 가까운 존재처럼 느껴져 전쟁에 대해 더 생각할 수 있다"고 반응한다. 이처럼 컬러화된 이미지는 과거의 사건을 ‘역사 속 먼 이야기’가 아닌 ‘나 자신의 이야기’처럼 느끼게 하는 힘을 가진다. 이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의 풍경과 80년 전의 풍경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하며, 시공간을 초월한 인간적인 연결고리를 형성한다. 전쟁의 비극이 단순한 사실 나열을 넘어 피부로 와닿는 순간이 바로 여기에 있다.
웃는 특공대원,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다
AI 기술은 때때로 우리가 마주하고 싶지 않은, 혹은 예상치 못한 진실의 단면을 드러내기도 한다. 유튜브 등 영상 플랫폼에 등장한 AI가 생성한 특공대원들의 웃는 모습은 바로 그런 사례이다. 흑백 사진 속 정지된 표정의 젊은 특공대원들이 AI 기술을 통해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활짝 웃거나 담소하는 모습으로 구현되자,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지금의 일본을 남겨줘서 감사하다"는 등의 뜨거운 반응이 쏟아졌다고 한다. 이러한 영상들은 역사와 전쟁에 대한 젊은 세대의 관심을 유도하려는 제작자들의 의도가 담겨 있다. 그러나 모든 이들이 이러한 AI의 ‘창조’에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전직 특공대원들은 이 영상을 보고 불편함을 감추지 못했다. 한 전직 특공대원은 AI가 만든 웃는 얼굴에 대해 "아니, 그건 귀신의 얼굴이다"라고 강하게 비판한다. 목숨을 걸고 죽음으로 향하던 이들에게서 보일 수 없는, 결코 실제가 아닌 웃음이라는 것이다. 이는 AI가 부여하는 ‘색’과 ‘표정’이 자칫 역사를 왜곡하거나 본질적인 고통을 희석시킬 수 있음을 경고한다. 과연 AI가 만들어낸 감정적인 이미지가 진정한 역사적 공감과 교훈을 전달하는지, 아니면 오히려 본래의 의미를 흐리게 하는지에 대한 윤리적 질문을 던지는 지점이다.
AI가 열어갈 기억의 계승, 그리고 윤리적 과제
전쟁 체험 세대가 사라지고 있는 시점에서, AI는 기억의 계승이라는 난제를 해결할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른다. 실제로 일본 내 70여 곳의 전쟁 관련 박물관 중 90%가 "기억 계승의 어려움"을 느끼고 있으며, AI를 활용하는 곳은 단 5곳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는 AI 기술이 아직 초기 단계임에도 불구하고 그 잠재력이 매우 크다는 점을 시사한다. AI는 흑백 사진에 색을 입히고, 정지된 인물을 움직이게 하며, 심지어 과거 인물의 목소리를 재현하여 쌍방향 소통이 가능한 증언 시스템을 구축하기도 한다. 이러한 기술은 특히 젊은 세대에게 역사적 사건을 더욱 생생하고 몰입감 있게 전달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도 짙어지는 법이다. 제작자 시모카와 류이치 씨가 강조하듯이, "지나친 가공은 위험하며, 사실과 크게 다르지 않도록 제작자는 역사를 배워야 한다"는 경고는 AI 활용의 중요한 윤리적 기준이 된다. AI가 만들어내는 이미지가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미묘한 조작이나 오류가 역사적 진실을 왜곡할 위험이 존재한다. 우리는 기술의 진보를 환영하면서도, 그것이 역사적 맥락과 인간의 복합적인 감정을 얼마나 정확하고 진실되게 담아낼 수 있는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색을 넘어선 공감, 전쟁의 교훈을 되새기다
AI가 흑백 사진에 색을 입히고, 정지된 인물에게 생명을 불어넣는다는 것은 단순히 시각적인 변화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과거의 시간과 현재의 우리가 시각적으로 연결되는 다리이며, 멀게 느껴졌던 타인의 고통이 ‘나의 일’처럼 다가오는 공감의 통로이다. 오키나와의 푸른 하늘이 80년 전에도 푸른색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시대를 초월한 연결감을 느낀다고 한다. 전장의 비극을 직접 겪었던 기시바 무네마사 씨(86세)는 AI 컬러화 사진에 대해 "흑백으로는 도저히 전달되지 않는 슬픔과 비참함이 컬러로 보이면 이해하기 쉽다"며, "주민들이 다시 일어서 복구에 힘썼다는 부분까지 보인다. 컬러는 정말 좋다"고 평가한다. 이는 AI가 단순한 시각적 재현을 넘어, 과거의 고통과 희망, 그리고 인간의 회복력이라는 복합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AI가 만들어낸 이미지가 때로는 진실을 희석시키거나 왜곡할 수 있다는 경고를 잊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 세대에 전달하려는 노력이 AI라는 새로운 도구를 만났을 때, 우리는 더욱 깊고 넓은 차원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AI는 역사를 전달하는 하나의 창문에 불과하며, 그 창문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낄지는 온전히 우리에게 달려 있다. 전쟁의 비극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는 AI가 입힌 색의 의미를 깊이 헤아려야 한다.
노잇. - KNOW IT. 세 줄 요약
AI 기술은 흑백 전쟁 사진에 색을 입혀 과거를 생생하게 소환하며 젊은 세대와의 공감대를 형성한다. 그러나 웃는 특공대원 영상처럼 진실을 왜곡할 수 있다는 윤리적 문제 또한 제기된다. AI는 기억 계승의 강력한 도구이지만, 역사적 정확성과 인간의 복합적인 감정을 온전히 담아내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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