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갈린 메시지 속 워싱턴 D.C. 시장의 고뇌
워싱턴 D.C.는 지금, 연방 정부와 지방 정부 간의 미묘하고도 복잡한 역학 관계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시기를 통과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수도의 치안 강화를 명목으로 국가방위군을 배치하고 경찰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뮤리얼 바우저 D.C. 시장의 입장은 외줄타기 곡예를 연상케 한다. 한편으로는 연방 정부의 조치가 "불안하고 전례 없는 일"이라며 D.C.의 완전한 자치권 부재에 대한 좌절감을 드러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더 많은 법 집행력과 지역사회 내 존재는 긍정적일 수 있다"는 현실적 인식을 내비치기도 한다. 이는 D.C. 시장으로서 연방 권력과 대치해야 하는 동시에, 시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이중적인 압박감 속에서 나온 고뇌의 흔적이다. 바우저 시장은 과거 트럼프 집권 초기 마라라고를 방문하고, 'Black Lives Matter' 글자 제거 요구에 응하며 유연한 태도를 보인 바 있다. 그러나 국가방위군 배치라는 초유의 사태는 그녀에게 가장 큰 리더십 시험대로 다가왔다. 그녀는 시민들에게 "이것은 지역사회가 뛰어들어 우리 모두가 각자의 영역에서 우리의 도시와 자치권을 보호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할 때"라며 강력한 '홈룰(Home Rule)' 수호 의지를 피력한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 수사를 넘어, D.C.의 역사적 아킬레스건인 자치권 문제와 직결되는 매우 민감한 사안이라 할 수 있다. 도시의 민주적 권리가 연방 정부의 결정에 의해 언제든 침해될 수 있다는 불안감은 D.C. 시민들의 오랜 염원이자 현재 진행형인 문제이다.
범죄율 논쟁: 트럼프의 주장과 데이터의 간극
트럼프 행정부가 워싱턴 D.C.에 국가방위군을 배치한 주된 명분은 바로 "통제 불능의 범죄율"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실제 데이터와 상당한 간극을 보인다. BBC 베리파이(BBC Verify)의 분석과 워싱턴 D.C. 경찰청(MPDC)의 자료에 따르면, D.C.의 강력 범죄는 2023년 정점을 찍은 후 감소 추세에 있으며, 2024년에는 지난 30년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2025년 잠정 데이터 역시 강력 범죄가 전년 대비 26% 감소하고, 강도 또한 28% 줄어들었다고 보고한다. 물론 올해 들어 100번째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경찰 노조 측에서는 범죄 데이터가 의도적으로 조작되고 있다는 주장을 제기하는 등 논란의 여지는 남아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공식 데이터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을 뒷받침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은 트럼프 행정부의 국가방위군 배치가 실제 치안 안정보다는 정치적 의도를 내포하고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특히 뉴욕과 시카고 등 민주당이 장악한 다른 대도시에도 유사한 배치를 위협하는 것은, 이번 조치가 다가오는 선거를 염두에 둔 '법과 질서' 프레임 구축의 일환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로스앤젤레스 시장 카렌 배스 또한 트럼프의 국가방위군 배치를 "정치적 쇼"라며 일축한 바 있다. 이처럼 범죄율을 둘러싼 공방은 단순히 숫자의 문제를 넘어, 정치적 대결의 장으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범죄의 정의': 스티븐 밀러의 아이러니한 통찰
워싱턴 D.C.의 '범죄'를 논할 때, 흥미로운, 때로는 섬뜩한 시각을 제시하는 이들도 있다. 풍자 작가 알렉산드라 페트리는 스티븐 밀러가 "범죄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트럼프 행정부의 주장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페트리는 워싱턴 D.C.에 범죄가 만연하다는 밀러의 주장을 역설적으로 이용하며, 그가 말하는 '범죄'가 실제로는 트럼프 행정부 내부의 인사들과 그들의 행태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꼬집는다. 1월 6일 의회 난입 사태 가담자들의 석방, 법원 명령을 무시한 법무부 직원, 의회법으로 설립된 교육부 해체 시도, 그리고 무엇보다 유죄 판결을 받은 '전과자'인 트럼프 대통령 자신과 그의 측근들까지, '법의 테두리'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거나 노골적으로 위반한 사례들을 나열한다. 이는 법의 집행이라는 명분 뒤에 숨겨진 또 다른 '법치주의'의 왜곡을 지적하는 통찰이다. 페트리는 심지어 대통령의 면책 특권이 암살까지 옹호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는 현실을 비꼬며, "누가 이런 도시에서 안전함을 느낄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한다. 또한, 영장 없는 체포와 구금, 학자의 표현의 자유 억압 등 정부 권력의 남용 사례를 '도시의 주요 테러'로 규정하며, 진정한 의미의 '무법천지'가 어디인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 풍자는 워싱턴 D.C.의 치안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단순히 거리의 범죄율에만 국한될 것이 아니라, 권력의 중심부에서 벌어지는 행위들에도 날카로운 잣대가 적용되어야 함을 일깨운다.
홈룰 수호와 정치적 역학 관계
워싱턴 D.C.의 자치권은 미국의 다른 주들과는 확연히 다른 특수한 위치에 놓여 있다. 1973년에야 시장과 의회 구성원 선출권이 부여되었지만, 여전히 특정 법률 제정에는 의회의 승인이 필요하며, 상하원 모두에서 투표권을 가진 대표를 두지 못하는 한계가 존재한다. 이러한 구조적 취약점은 연방 정부의 개입이 언제든 D.C.의 자율성을 침해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한다. 바우저 시장이 "자치권을 잃어버리는 시장이 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녀의 절제된 반응과 전략적인 태도는 이러한 D.C.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한 결과로 해석된다. 정치 분석가 톰 셔우드는 바우저 시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변덕스러운 태도에 대처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고 평가한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D.C.는 "자유주의적이고, 대부분 흑인이며, 범죄 척결에 무관심한 도시"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 시장과 시의회가 그의 표적이 되기 쉽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D.C. 내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강압적인 조치에 대한 반감이 매우 거세다. 워싱턴 시민들은 지난 대선에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에게 90%에 달하는 몰표를 주었을 정도로 반트럼프 정서가 강하다. '프리 D.C. 프로젝트'와 같은 시민 운동 단체들은 연방 정부의 경찰력 동원 조치를 강력히 규탄하며, 이를 "권위주의적 압력"이자 "국가 폭력"으로 규정한다. 이들은 단순히 경찰력 증강이 아닌 사회 프로그램 투자를 통해 취약 계층을 지원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주장한다.
미래를 향한 D.C.의 과제와 미국의 민주주의
워싱턴 D.C.에 국가방위군이 배치된 이번 사태는 단순히 수도의 치안 문제로 국한되지 않는, 미국의 민주주의와 지방 자치권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대통령의 행정 명령 하나로 도시의 자치권이 위협받고, 시민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현실은 D.C.가 '주(State)'가 아닌 '특별구(District)'로서 안고 있는 구조적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프리 D.C. 프로젝트의 조직 책임자인 니 니 테일러는 바우저 시장이 "D.C.가 주가 아니라는 점을 감안할 때, 최선을 다해 맞서고 있다"고 말하며 시장의 입장을 옹호한다. 이는 D.C. 시민들이 처한 딜레마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연방 정부의 개입이 '안전'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더라도, 그 과정에서 지방 정부의 권한이 축소되고 시민의 기본권이 위협받는다면, 이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로 비판받을 수 있다. 궁극적으로 이번 사태는 워싱턴 D.C.의 온전한 주 승격이라는 오랜 염원을 다시금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법과 질서의 회복이라는 대의명분 뒤에 숨겨진 정치적 계산, 그리고 수도의 자치권이라는 예민한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가운데, 워싱턴 D.C.는 물론 미국 전체의 민주주의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는 이 사태를 통해 '권력의 집중'과 '지방 자치'라는 민주주의의 오랜 화두를 다시금 되짚어보게 된다.
노잇. - KNOW IT. 세 줄 요약
트럼프 행정부의 워싱턴 D.C. 국가방위군 배치와 관련하여 바우저 시장은 유연함과 강경함을 오가는 복합적인 입장을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D.C.의 범죄율 심각성을 이유로 들지만, 실제 데이터는 감소 추세를 보여 정치적 의도가 강하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는 D.C.의 고질적인 자치권 문제를 재조명하며, 권력 남용과 민주주의의 위협이라는 더 큰 질문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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