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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향한 침묵의 절규: 100년 전 그 법이 남긴 상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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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know.it.kr/trend_jp/20250817/silent-scream-freedom-peace-preservation-law
Published
2025/08/17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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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本恵里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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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년 전 그날, 자유를 옥죊던 법의 탄생

지금으로부터 백 년 전, 1925년 제정된 일본의 ‘치안유지법’은 당시의 암울했던 시대상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동시에, 한 사회가 어떻게 자유를 스스로 옥죄고 파멸로 치달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섬뜩한 경고와도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법은 처음에는 일본 내 공산주의 운동을 제압하려는 의도로 도입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적용 범위는 놀랍고도 무서울 정도로 급속히 확대되기 시작합니다. 초기에는 ‘국체(國體) 변혁’이나 ‘사유재산제도 부인’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를 처벌하는 데 중점을 두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군국주의에 반대하는 목소리, 정부 시책에 비판적인 지식인, 심지어 평범한 시민들까지 그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저 다른 생각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불온 사상가’ 혹은 ‘비국민’이라는 낙인이 찍히고 무자비하게 검거되는, 상상하기 힘든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당시 일본 사회에서 여성들의 삶은 어떠했을까요? 여성들은 참정권조차 없었으며, 사회 활동은 철저히 제약되었습니다. 대부분 가정에 갇혀 살거나, 혹 일을 한다 해도 열악한 직업 환경과 극심한 차별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심지어 가난 때문에 어린 소녀들의 인신매매마저 드물지 않았던 그 시대의 비참한 현실은 많은 젊은 여성을 자연스럽게 사회 변혁을 꿈꾸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노동 운동과 반전 운동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으며, 당시의 공산주의 사상에 강하게 공명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이는 단지 이념적인 동조를 넘어, 자신들의 억압된 처지를 벗어나고자 하는 절박한 열망의 표현이기도 했습니다. 군국주의 체제를 공고히 하고 모든 반대 세력을 뿌리 뽑기 위한 이 법의 폭주는 그야말로 ‘법의 폭력’ 그 자체였으며, 사회 전체를 병들게 하는 광기에 가까웠다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한때 특정한 사상을 제압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 순식간에 전체 사회를 통제하는 거대한 억압의 도구로 변질되는 과정은, 자유라는 가치가 얼마나 소중하며 또 얼마나 쉽게 침해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뼈아프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할 것입니다.

침묵 속에 감춰진 비명: 여성들과 비공산주의자들의 비극

치안유지법의 그늘 아래에서 가장 참혹한 형태로 고통받았던 이들은 다름 아닌 당시 사회의 약자들, 특히 젊은 여성들이었습니다. 보도된 바에 따르면, 특고 경찰에게 체포된 여성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잔혹한 고문을 당했습니다. 가난한 이들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어 공산당에 입당했던 야마다 히사코 씨의 수기는 그 실상을 생생하게 증언합니다. 그녀는 남자 특고 경찰 5, 6명에게 발가벗겨진 채 ‘짐승 같은 그들이 나의 음부를 담뱃불로 지졌다’고 기록했습니다. 이처럼 인간의 존엄성을 무참히 짓밟는 성적 고문은 ‘여성을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시대’라는 야마다 씨의 통렬한 한마디로 요약됩니다. 여성들은 단지 다른 생각을 가졌다는 이유로, 혹은 사회 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정신적, 육체적으로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어야 했습니다. 이와 함께 치안유지법의 희생자 중에는 공산주의자가 아닌 이들도 많았다는 사실은 특히 주목할 만합니다. ‘인생론 노트’ 등의 저서로 잘 알려진 철학자 미키 키요시의 죽음은 이 법의 무자비한 광범위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그는 공산주의자도 아니었고 국체 변혁을 꾀한 인물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주변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친절함이 화근이 되어 결국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었고, 1945년 9월, 일본이 패전한 지 한 달 반이 지난 시점에도 불구하고 도쿄의 토요타마 형무소 독방에서 열악한 환경으로 인한 기생충 감염증으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의 죽음은 당시의 사회 운동가들뿐만 아니라 평범한 지식인들조차 사상 탄압의 칼날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음을 웅변합니다. 최근 선거에서 의석을 늘린 한 정당의 대표가 치안유지법을 두고 ‘공산주의자에게는 악법’이라고 평가절하한 것은 이러한 역사의 비극적 단면을 간과한 위험한 인식이라 할 것입니다. 이 법은 특정 이념을 넘어 사회 전체의 자유와 인간의 기본권을 송두리째 짓밟은 ‘악법’ 그 이상이었다는 점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됩니다.

감시의 눈동자: 평범한 시민을 옥죊던 일상

치안유지법이 드리운 그림자는 단순히 특정 사상가나 운동가만을 옥죈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법은 사회 전체에 깊숙이 스며들어, 평범한 시민들의 일상까지 감시와 통제의 대상으로 만들었습니다. ‘보도특집’에서 다뤄진 1942년 경찰이 제작한 영화 ‘경찰의 한때’는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이 영화는 특고 경찰의 활동을 묘사하며, ‘방첩(防諜) 당번’이라는 이름으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스파이 색출 활동에 동참하도록 독려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수상한 남자를 발견한 여성이 그가 남긴 전단을 재빨리 확인하고 ‘불온 전단’임을 확신한 뒤 곧장 경찰에 신고하는 장면은, 당시 사회에 만연했던 상호 감시의 분위기와 당국이 어떻게 시민들을 동원하여 통제 체제를 공고히 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신고한 시민은 칭찬과 표창을 받으며, 이러한 행위가 애국적인 것으로 포장되기도 했습니다. 오타루 상과대학의 오기노 후지오 명예교수는 당시 일본의 ‘주재소나 파출소가 거미줄처럼 펼쳐져 있었다’고 지적합니다. 이는 곧 시민들로부터 경찰로, 그리고 특고 경찰로 정보가 흘러들어가는 치밀한 감시망이 사회 전반에 깔려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당국으로부터의 추궁은 물론, 사회 구성원들로부터도 ‘윤리적, 도덕적 책임’이라는 명분 아래 사상과 행동을 감시받고 고발당할 수 있다는 압박 속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이는 곧 불필요한 의심과 고발이 난무하는, 극도로 불안정한 사회를 만들었습니다. 심지어 그림을 그렸다는 이유만으로 투옥되었던 103세의 ‘마지막 생존 증인’과 같은 사례는, 예술과 표현의 자유마저도 허용되지 않았던 숨 막히는 현실을 대변합니다. 치안유지법은 단순히 법 조항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의식과 행동을 통제하고 자기 검열을 강요하는 문화적 압력으로 작동했습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자유로운 사유와 표현을 잃어버리고, 국가가 원하는 단일한 방향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도록 강요받았던 것입니다. 이는 개인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다양성과 건전한 비판 정신을 말살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우리는 평가할 수 있습니다.

역사의 교훈, 그리고 현재를 응시하는 눈

치안유지법이라는 어두운 역사를 되새기는 것은 단순히 과거를 회고하는 것을 넘어, 현재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다시금 성찰하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됩니다. ‘보도특집’의 캐스터가 미국의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스라엘 지원에 이의를 제기하는 세력을 봉쇄하려는 상황을 언급하며 우려를 표한 것은, 이처럼 과거의 역사가 현재에도 유사한 형태로 반복될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특정 이념이나 사상을 이유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거나, 반대 의견을 ‘불순하다’는 프레임으로 몰아가는 시도는 시대를 막론하고 언제든지 재현될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합니다. 이는 마치 군국주의 시대 일본이 ‘자유주의, 반전 사상, 종교인, 언론인까지 편파적으로 ‘빨갱이’, ‘비국민’이라는 딱지를 붙여 무작정 잡아들였던’ 것과 같은 ‘법의 폭주’가 현대 사회에서도 다른 이름으로 나타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의 뼈아픈 교훈을 통해 ‘법’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될 수 있는 폭력과 그로 인한 인권 유린의 심각성을 깨달아야 합니다. 당시의 많은 사람들이 치안유지법의 부당함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주의적인 분위기와 상호 감시 체제 속에서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은 자유의 목소리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동시에 야마다 히사코 씨처럼 ‘여성을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던 시대’에도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맞섰던 ‘힘 있는 여성들’의 존재는 우리에게 용기와 희망을 전합니다. 그들은 불굴의 정신으로 억압에 저항하며 민주 사회의 근간을 지키려 노력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단순히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자유와 정의를 수호해야 하는 우리의 사명을 일깨우는 살아있는 증거라 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 법의 역사를 통해, 겉으로는 민주주의를 표방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소수 의견을 배제하고 억압하려는 움직임이 없는지 끊임없이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성찰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진정한 자유와 포용의 가치를 지켜나가는 중요한 첫걸음이 됩니다.

기억하는 자의 사명: 다가올 미래를 위한 성찰

치안유지법이 남긴 깊은 상흔은 단순히 과거의 한 페이지로 넘겨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는 미래를 향한 강력한 경고이자, 우리 사회가 끊임없이 성찰해야 할 역사적 과제를 안겨주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00년이라는 시간은 과거의 고통을 희미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반대로 그 고통을 통해 얻은 교훈을 더욱 명확하게 빛내야 하는 시간입니다. 역사의 마지막 생존 증인들이 전하는 생생한 증언과, 야마다 히사코 씨의 처절한 수기, 그리고 미키 키요시와 같은 지식인들의 비극적인 죽음은 우리에게 말 없는 외침으로 다가옵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자유로운 사상과 표현이 얼마나 취약한지, 그리고 그것을 지키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과거와는 다른 형태의 위협에 직면하기도 합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여론이 쉽게 왜곡되거나, 특정 집단의 목소리가 비정상적으로 증폭되어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키고, 때로는 비판적 사고를 마비시키는 현상들을 목격합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치안유지법의 교훈은 더욱 중요해집니다. 우리는 겉으로 드러나는 ‘법’의 이름 뒤에 숨겨진 진정한 의도와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인권 침해의 가능성을 늘 경계해야 합니다. 정부와 시민 사회 모두가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 그리고 비판의 자유를 보장하고 수호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며, 다수의 이름으로 소수의 목소리가 억압받는 일이 없도록 사회적 시스템과 윤리 의식을 확고히 구축해야 합니다. 결국, 치안유지법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교훈은 ‘기억하는 것’이 곧 ‘미래를 지키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비극적인 역사를 올바로 기억하고, 그 안에서 피어났던 용기 있는 저항의 정신을 되새긴다면, 우리는 어떤 위협 속에서도 자유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굳건히 지켜낼 수 있을 것입니다. 치안유지법이 더는 반복되지 않는, 진정으로 자유롭고 인권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바로 우리 모두의 시대적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노잇. - KNOW IT. 세 줄 요약

일제강점기 100년 전 제정된 치안유지법은 본래의 목적을 넘어 모든 반대파를 무자비하게 탄압했습니다. 특히 여성들은 잔혹한 성적 고문을 당했고, 사상가 미키 키요시조차 비인간적인 환경에서 옥사하는 등 수많은 비공산주의자들도 희생되었습니다. 이 법은 자유를 억압하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며 시민들조차 감시에 동참하게 했으며, 오늘날에도 그 역사의 교훈은 현재의 자유를 성찰하게 하는 중요한 경고로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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